‘시조’의 맥을 잇다 [10]
태평성대가(太平盛代歌)
절의(絶義) 유성원(柳誠源; ? ~1456) -
초당(草堂)에 일이 없어/ 거문고를 베고 누어.
태평(太平)- 성-대(盛代)를/ 꿈에나 보려트니,
문전(門前)에 수성어적(數聲漁笛)이/ 잠든 나를 깨와다!
위 시조는 유성원의 유일한 시조로 집현전 학사 겸 서연관(書筵官; 왕세자를 가르치는 관리)으로 있으면서 일상의 소회를 읊은 것이라, 그의 고달픈 업무와 단종의 장래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.
초장{초당에 일이 없어/ 거믄고를 베고 누어,} (모처럼) 집에 퇴근해 와서 할 일이 없어/ 거문고를 베고 잠시 누워 본다.
중장{태평- 성-대를/ 꿈에나 보려트니,} 어린 임금의 선정으로 이룰 태평한 세상을/ 먼 훗날 꿈에서나 만나보려 했더니,
종장{문전에 수성어적이/ 잠든 나를 깨와다!} (아니 벌써) 문 앞에서 들리는 어부들의 (풍어를 즐기는) 피리 소리가/ 잠든 나를 깨우는구나!
1444년 과거에 급제, 세종성왕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에서 근무한 유성원(柳誠源)은, 세종과 문종으로부터 ‘어린 세자를 잘 보호해 달라’는 부탁(유언)을 받아, 문종 병사 후 12세 단종을 왕위 등극을 도왔다.
1453년(단종 1년) 계유정난(癸酉靖難; 극악한 삼촌 수양대군이 단종의 측근 황보인, 김종서 등 70여 충신들을 ‘모반죄’를 씌워 살해 제거하고, 정권과 병권을 찬탈한 난동 사건)에 이어 단종에게 강제 선위를 받아내 1455년 왕좌를 차지했다.
한편 단종복위운동(端宗復位運動)이 몰래 진행되던 중 김질의 배신 밀고로 알게 된 세조는, 운동 가담자들을 무법 숙청하고 상왕(단종)을 평서인으로 강등시켜 드디어는 유배 사형시키는 인간 이하의 만행을 저질렀다.
목숨 건 동지들이 작형과 거열형을 받을 때, 그는 자결해 목숨을 끊었다.
물론 세조 횡포로 부친과 두 아들의 사형, 아내와 어머니는 노비가 되었다.
시조시인 알밤 황태모